우동을 먹을까 라면을 먹을까

휴게소에 와서 우동을 먹을지 라면을 먹을지 고민을 하다가 자극적인 라면을 먹고 싶지 않아 우동을 선택했다. 자리에 앉았고 나의 정면에 보이는 라면 사진에 바로 눈길이 갔다. 재밌는 것은 라면 사진은 고개를 거의 돌려야 정면으로 볼수있는 가장 오른쪽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시각에 가장 약하다. 뇌에서도 많은 감각들중 시각에 관여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한다. 시각은 내가 삶에서 바라보는 실제적인 이미지 뿐아니라 상상, 꿈에서도 생생하다. 김치가 빨갛기를 기대하고 단무지가 노랗기를 기대하듯 나의 기억은 상상을 만들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심볼을 만들어낸다.

우동을 황급히 다 먹고 글을 다시 쓴다. 첫 국물에서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우동 국물도 라면과 비교하지않는다면 충분히 자극적이다. 감칠맛이 확 돈다. 라면이 아닌 병원 입원할때 먹는 밥과 비교를 한다면 우동은 라면에 훨씬 더 가까운 자극이라 할 수 있다. 꼬들한 면과 어묵을 음미하며 먹다가 문득 이런 감흥에 대해 글이 쓰고 싶어졌고, 나는 어느새 라면을, 아니 우동을 허겁지겁 먹었다. 영감은 찰나에 찾아오고 그것을 저장하려고 하는 순간 시간 축의 제곱으로 값어치가 하락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런 수학적 표현을 생각해내느라 벌써 내가 반쯤 우동을 먹고 피어난 생각을 놓쳐버렸다 )

인간은 태생적으로 연관지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이 반복적인 행동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가령 내가 여기 휴게소에서 가락국수 표지판을 보고 들어와 우동을 먹었는데 그때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을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이 다음 다른 곳에서 우동을 먹을때 그리고 그때 혼자 있다면 나는 글을 쓰려고 한다거나 쓰지않더라도 이런 관념적인 생각을 자아내려는 의지가 알 수 없이 발동할 것이다.

몇 년전, 아르바이트일의 중간 1시간의 휴식시간 동안 동네 어느 닭곰탕 집에서 닭곰탕을 먹으며 UFC경기를 몰입해서 본 적이 있는데 (그 경기의 생방송을 놓쳐서 누가 이겼는지만 뉴스로 파악한 후 일을 하는 시간내내 경기내용이 무척 궁금해서 안달이나있었다) 한강으로 걸어가는 길 닭곰탕집만 지나치면 어느새 나는 한강 공원 인적이 드문 곳으로 달려가 쉐도우 복싱을 하곤했다. 그 닭곰탕집이 나에게 트랜스 포트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어떤 음식이 누구를 떠올리게 한다든지 , 어떤 장소가 어떤 사건을 생각나게 하여 또 다시 지금의 상황과 연관지어 그 사건을 해석하게 한다든지 하는 인간 활동은 나의 실제 행동 (우동을 먹는다거나)과 별개로 또 작동하게 된다.

그 말 즉슨 인간은 과거를 계속 의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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